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최근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우울증, 불안, 양극성 장애 등 정신건강 질환을 겪는 인구가 10억 명을 넘어섰다. 이는 전 세계 인구의 8명 중 1명꼴로, 그 심각성이 숫자로 드러났다. 그러나 문제는 이 엄청난 규모에 비해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하는 체계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특히 저소득 국가에서는 정신건강 관련 의료진과 시설이 극도로 부족하다. 일부 국가는 정신과 전문의 수가 수십 명에 불과해, 사실상 대다수 환자가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되는 상황이다. WHO는 “정신건강 문제는 더 이상 소수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공중보건 과제”라며 “즉각적인 정책적·재정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신건강 악화는 단순히 개인의 고통으로 끝나지 않는다. 생산성 저하, 가족관계 붕괴,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져 국가 경제와 사회 전반에 막대한 손실을 일으킨다. 세계은행은 정신건강 문제로 인한 연간 경제적 손실이 1조 달러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최근에는 청소년과 젊은 세대의 정신건강 악화가 특히 주목된다. 스마트폰 과의존, 불확실한 미래, 취업난 등이 겹치면서 불안장애와 우울증 진단을 받는 10대·20대가 급증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러한 경향을 가속화시켰다. WHO 관계자는 “정신건강은 신체건강과 동등하게 다뤄져야 하며, 학교·직장·지역사회 차원의 지원 체계가 촘촘히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국내 성인 4명 중 1명이 생애 한 번 이상 정신건강 문제를 겪으며, 청소년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정신과 진료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높은 비용 부담이 여전히 치료 접근을 가로막는다.
전문가들은 “정신건강을 부끄러운 것이 아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건강 문제로 바라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WHO의 이번 발표는 단순한 통계 보고를 넘어, 전 세계가 정신건강을 국가 보건 전략의 핵심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