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그런 음식이 있다. 입은 즐거워하지만, 몸은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는 음식. 어떤 것은 먹는 순간 마음이 위로받는 것 같고, 어떤 것은 스트레스를 잠시 잊게 해준다. 달콤함, 짭짤함, 자극적인 맛은 감정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몸보다 감정을 먼저 만족시키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몸은 그 선택을 다르게 해석한다. 감정은 순간적으로 편안해지지만, 몸은 그 순간을 지났을 때야 “지금은 괜찮지 않았다”고 조용히 알려온다.
몸이 좋아하지 않는 음식들은 대부분 ‘강한 자극’을 기반으로 한다. 강한 단맛이나 짠맛, 인공적인 풍미는 뇌의 보상체계를 빠르게 자극하고, 기분을 순간적으로 끌어올린다. 하지만 이런 자극은 몸의 자연스러운 리듬과 맞지 않는다. 혈당은 갑자기 올라갔다가 빠르게 떨어지고, 소화기관은 갑작스러운 부담을 받으며, 감정은 안정과 불안을 빠르게 오간다. 결국 마음은 잠시 위안받지만, 몸은 그 위안을 뒷수습하느라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된다.
문제는 우리가 이 미묘한 신호를 자주 무시한다는 데 있다. 몸이 보내는 ‘약간의 답답함’, ‘묘한 더부룩함’, ‘이상한 피로감’은 감정적 만족 뒤에 밀려 사소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사소함이 쌓이면 몸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더 강한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식욕이 흐트러지거나, 잠이 얕아지거나, 작은 스트레스에도 예민해지는 변화들이 그것이다. 몸은 늘 말하지만, 우리가 듣지 않는 것이다.
몸이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멀리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 음식이 주는 감정적 위안이 무엇인지, 그 위안이 몸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 알아차리는 감각이 필요하다. 어떤 날은 감정이 너무 지쳐 그 음식이 꼭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비난이 아니라 “지금 나는 위로가 필요했구나”라고 말해주는 것이 훨씬 낫다. 그러면 몸은 더 큰 반발 없이 그 선택을 흘려보낸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음식이 아니라 ‘몸의 언어를 듣는 감각’이다. 몸은 늘 정직하게 말하지만, 우리는 너무 많은 소음 속에 살아 그 목소리를 놓치곤 한다. 몸이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는 음식들이 남기는 것은 죄책감이 아니라, 몸을 다시 바라볼 기회일지도 모른다. 내 몸이 어떤 맛을 참아내고 어떤 맛을 부담스러워하는지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몸과 더 가까워진다. 건강은 제한이 아니라 이해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