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스트레스를 말할 때 주로 사건을 떠올린다. 업무의 압박, 관계에서의 갈등, 예상치 못한 변수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그 사건들이 남긴 상처보다 더 오래 남아 있는 것은 그 순간 우리가 ‘어떻게 반응했는가’ 하는 방식이다. 어떤 사람은 작은 일에도 심장이 먼저 반응하고, 어떤 사람은 크게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에도 겉으로는 괜찮은 듯 지나친다. 그러나 몸은 그 모든 반응을 기억해 신경계의 패턴으로 저장한다. 스트레스 그 자체보다 스트레스를 마주한 방식이 몸의 깊은 층에 오래 새겨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경계는 단순히 자극을 처리하는 회로가 아니다. 우리가 감정을 다루는 방식, 위협을 인식하는 방식, 불안을 밀어붙이는 방식까지 모두 포함하는 복합적인 시스템이다. 순간적으로 강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신경계는 즉시 교감신경을 활성화하고 몸 전체에 ‘대비태세’를 알린다. 심장은 빨라지고, 호흡은 얕아지며, 근육은 아주 미세한 경계를 유지한다. 문제는 이 대비태세가 끝나야 할 시점에도 우리의 마음이 계속 그 순간을 붙잡고 있다는 데 있다. 몸은 이미 안전한 상황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아직 준비가 덜 된 것이다.
이 불일치는 면역에도 깊은 여파를 남긴다. 스트레스가 길어질 때 면역 시스템은 처음엔 잠시 활동을 올리지만, 시간이 지나면 급격히 불안정해진다. 염증 반응이 증가하고 감기 같은 가벼운 감염에도 취약해지는 이유는 단순히 ‘피곤해서’가 아니라, 신경계가 위험을 과하게 인식한 상태가 지속되며 몸의 자원을 엉뚱한 곳으로 계속 보낸 결과다. 몸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움직였지만, 그 방향이 마음과 함께 조율되지 못했기에 과잉 혹은 결핍의 형태로 균형을 잃는다.
스트레스를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마주하는 ‘자세’를 가다듬을 수는 있다. 억누르거나 무시하는 방식은 단기적으로 효율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몸이 위험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게 만든다. 오히려 “지금 나는 긴장하고 있구나”, “이 감정은 불편하지만 지나갈 수 있는 것이구나”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순간, 신경계는 과도한 대비태세에서 조금씩 풀려난다. 이 작은 인정은 몸이 위험을 분류하는 방식을 다시 정교하게 만들고, 결국 면역 역시 불필요한 과잉을 멈추게 한다.
몸은 마음이 이해한 만큼만 안정된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다루는 방식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신경계가 세상을 읽어내는 언어다. 이 언어가 조금 부드러워질 때, 몸도 함께 부드러워진다. 균형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내는 반응의 결에서 천천히 회복된다. 스트레스가 많은 시대일수록, 몸은 우리가 그 순간을 어떻게 지나가는지를 더 조용히, 그러나 더 정확하게 바라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