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가 많을 때 어떤 사람은 식욕이 줄고, 또 어떤 사람은 폭식에 가깝게 음식을 찾는다. 흥미로운 점은 동일한 사람 안에서도 두 현상이 번갈아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어떤 날은 밥맛이 전혀 없고, 또 어떤 날은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먹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올라온다. 사람들은 이를 성격 차이거나 단순한 기분 문제로 이해하지만, 그 안에는 훨씬 더 정교한 생리적 메커니즘이 숨어 있다. 스트레스는 식욕을 직접적으로 조절하는 가장 강력한 신호이며, 그 방향은 우리가 겪는 감정과 신경계의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우선 식욕이 줄어드는 경우를 보면, 이는 신경계가 ‘긴급상황’이라고 판단했을 때 나타난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급격히 상승하면 몸은 생존에 중요하지 않은 기능들을 일시적으로 멈추려 한다. 그중 가장 먼저 멈추는 것이 바로 소화다. 위장이 조여들고, 장은 움직임을 줄인다. 이런 상태에서는 음식을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부담이 된다. 그래서 입맛이 떨어지고, 먹어도 속이 금방 불편해진다. 이는 몸이 제 기능을 잃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반응이다.
반대로 스트레스 상황에서 식욕이 증가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몸이 ‘안정’을 찾기 위해 음식을 이용하는 방식에 가깝다. 스트레스가 장기화되거나 감정적 압박이 깊어질 때 몸은 에너지를 빠르게 소모한다. 이때 음식을 통해 안정을 얻으려는 욕구가 커지고, 특히 탄수화물이나 달콤한 음식처럼 빠르게 포만감과 만족감을 주는 음식에 더 강하게 끌리게 된다. 이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몸이 정서를 조절하기 위해 선택한 일종의 자가 보상이다. 먹는 동안 잠시라도 안정 신호가 켜지기 때문에 몸은 그 경험을 반복하려 한다.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은 호흡이다. 스트레스가 높아지면 호흡은 자연스럽게 짧아지고, 짧아진 호흡은 신경계에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낸다. 이때 배고픔이 아닌데도 음식이 땡기는 이유가 생긴다. 호흡이 얕아진 상태는 몸이 언제든 반응해야 하는 상황처럼 느끼게 하고, 빠른 에너지원인 음식이 필요하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그래서 스트레스 상황에서 과식이나 간식이 늘어나는 것이다. 이는 몸의 오작동이 아니라, 과부하된 시스템이 순간적으로 에너지를 끌어모으려는 시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가 식욕을 흔든다고 해서 반드시 음식으로 해결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몸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안정’이지, 음식 자체가 아니다. 식욕이 갑자기 치솟을 때 잠시 호흡을 길게 내쉬거나, 천천히 걷거나, 손이나 어깨의 힘을 풀어주는 것만으로도 그 욕구는 상당히 줄어든다. 몸은 안정 신호와 배부름 신호를 헷갈릴 때가 많다. 그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음식이 아닌 몸의 리듬을 먼저 안정시켜야 한다.
식욕의 변화는 통제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이해해야 할 신호다. 식욕이 줄어든 날은 몸이 긴급 신호를 켜고 있었다는 뜻이며, 식욕이 과하게 올라온 날은 감정의 무게를 스스로 달래려 했다는 의미다. 자신을 탓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오늘 내 몸이 어떤 상태였길래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몸은 한층 부드럽게 반응한다. 스트레스와 식욕의 관계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음식을 선택하는 방식뿐 아니라 삶을 대하는 방식까지 더욱 부드럽고 안정적으로 조율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