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습관이 무너질 때 우리 몸이 잃어버리는 미세한 균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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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ray of a human pelvis and hips

걷는다는 것은 너무 익숙해서 그 가치를 잊기 쉽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예전처럼 잘 걷지 않게 된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일이 많아서였는지, 날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귀찮아졌기 때문인지 이유를 찾기 어렵지만, 분명한 점은 걷기라는 가장 기본적인 습관이 조금씩 끊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출근길에 엘리베이터를 타는 횟수가 늘고, 가까운 거리임에도 차를 타게 되고, 하루의 걸음 수가 예전보다 현저히 줄어들었을 때 몸은 아주 작은 불균형을 조용히 축적하기 시작한다.

걷기가 줄면 가장 먼저 변하는 것은 ‘하체의 감각’이다. 다리가 무거워지는 느낌, 오래 서 있으면 쉽게 피로해지는 느낌, 계단을 오를 때 허벅지가 왠지 더 뜨겁게 반응하는 순간들. 많은 사람들은 이를 단순한 체력 저하로 여긴다. 하지만 실제로는 체력보다도 신경계가 움직임의 리듬을 잃어버린 상태에 더 가깝다. 걷기는 단순한 이동 방식이 아니라, 몸 전체의 균형을 재조정하는 일종의 조율 과정이다. 이 조율이 멈추면 몸은 자신만의 속도를 잃어버린다.

특히 걷기 습관이 무너질 때 가장 크게 흔들리는 것은 ‘골반의 안정성’이다. 사람들은 허리 통증을 허리 자체의 문제로 생각하지만, 대부분은 골반이 충분히 움직이지 못하면서 생기는 결과에 가깝다. 걷는 동안 골반은 앞뒤로 흔들리며 척추를 안정시키고, 다리와 몸통 사이의 힘을 분산한다. 그런데 걷기가 줄면 이 흔들림이 줄어들고, 골반을 잡아주는 깊은 근육들은 점점 게을러진다. 그 결과 허리는 혼자 힘으로 몸을 버텨야 하고, 무릎은 과도하게 힘을 사용하게 된다. 그래서 활동이 적은 날일수록 오히려 몸이 더 뻣뻣해지고, 작은 움직임에도 불편함이 커지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걷기는 마음의 리듬을 회복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다. 걸을 때 우리의 뇌는 좌우로 교차하는 움직임을 따라가며 자연스러운 진정을 경험한다. 이 교차 움직임은 뇌의 양쪽 반구를 부드럽게 연결시키고,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래서 걷기만 해도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걷기가 줄면 이 ‘정리의 순간’이 사라진다. 하루의 긴장과 생각이 신체 안에서 섞인 채 남아 있어 다음 날까지 이어지고, 쉽게 피로해지고 산만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걷기 습관이 무너졌다는 신호는 아주 사소한 곳에서 나타난다. 앉아 있다가 일어날 때 무릎이 잠시 굳어 있는 느낌, 발바닥이 묵직하게 가라앉는 순간, 오래 앉아 있었던 몸이 쉽게 풀리지 않는 느낌. 그 모든 신호는 “몸이 움직임을 잃었다”는 조용한 알림이다. 하지만 회복 역시 사소함에서 시작된다. 멀리 걷거나 오래 운동할 필요가 없다. 점심시간 5분의 짧은 산책, 퇴근 후 집 앞을 천천히 도는 10분의 걸음만으로도 신경계는 다시 움직임의 감각을 기억한다. 중요한 것은 ‘거리’가 아니라 ‘리듬’이다.

걷기는 우리가 잃어버린 가장 기본적인 회복의 언어다. 생각보다 훨씬 깊게 몸을 안정시키고, 마음을 정돈하며, 하루의 흔들림을 부드럽게 가라앉힌다. 걷기 습관이 무너졌다는 것은 단순한 운동 부족이 아니라, 삶의 속도와 몸의 속도가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그 어긋남을 다시 맞추는 일은 아주 짧은 걸음에서부터 시작된다. 걸음을 다시 내딛는 순간, 몸은 잃어버린 균형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균형은 결국 우리를 삶의 중심으로 다시 데려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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