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몸에 새기는 긴장 각인: 목·어깨 통증의 정서적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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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끝나갈 무렵, 많은 사람들이 저녁이 가까워질수록 목 뒤가 굳어가거나 어깨가 돌처럼 뭉친 느낌을 경험한다. 단순히 컴퓨터를 오래 해서 그런 것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 통증은 업무 시간보다 훨씬 더 이른 시점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출근 준비를 하며 일정표를 떠올릴 때 이미 어깨가 가볍게 올라가 있고, 아침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의 표정 사이로 나직한 긴장감이 스며드는 순간부터 몸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그 변화를 전혀 느끼지 못한 채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몸은 우리보다 먼저 감정의 잔향을 기억하고, 아주 작은 불안의 움직임조차 어딘가에 각인해버린다. 그것이 하루가 끝났을 때 갑자기 찾아오는 통증의 실체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불안하다’는 사실을 거의 자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불안은 항상 거창하거나 극적인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마감 기한을 맞추기 위한 생각, 늦으면 안 된다는 압박감,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잠깐 흔들린 마음,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관계의 긴장감 같은 것들은 아주 미세하게 흐르는 정서다. 사람들은 이런 정서의 파편을 지나가는 기분 정도로 넘기지만, 몸은 그 순간마다 근육을 미세하게 조이고 신경계를 경계 모드로 올린다. 특히 목과 어깨는 감정적 경계에 가장 빠르게 반응하는 부위다. 이유는 단순하다. 가장 위에 있고, 가장 무거운 머리를 지탱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위협에 대비하는 반사작용’이 시작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불안이 근육에 각인되는 과정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진행된다. 불안은 결코 마음속에만 머물지 않는다. 마음에서 시작된 긴장은 바로 신체로 흘러가고, 그 첫 경로가 목 앞의 작은 근육들과 어깨 윗부분의 승모근이다. 정서적으로 압박을 느끼면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턱을 조금 더 앞으로 내밀고, 어깨를 약간 끌어올리고, 가슴을 미세하게 조인다. 이 패턴은 마치 우리가 거북목을 의식적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감정이 먼저이고 자세가 그 뒤를 따른다. 오래 반복되면 이 근육들은 기본적으로 긴장된 상태를 ‘정상’으로 오해하기 시작하고, 결국 하루 중 거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힘이 빠지지 않는 형태로 굳어진다.

여기에 또 다른 요인이 겹친다. 우리의 뇌는 불안한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근육을 동원해 스스로를 보호하려 한다. 잘못된 습관이 아니라, 본능적인 반응이다. 문제는 현대인의 불안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몸이 방어 태세를 풀 기회를 거의 가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결코 큰 사건이 없는데도 몸이 하루 종일 경직되어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근육이 긴장하면 혈류는 줄어들고, 혈류가 줄어들면 산소 공급이 떨어지며, 산소 공급이 떨어지면 통증과 피로가 깊어진다. 목과 어깨는 구조적으로 혈류가 원활하지 않은 부위라 이런 변화에 더욱 취약하다. 우리는 해결되지 않은 감정을 들고 하루를 버티며 살아가고, 그 대가로 몸은 조금씩 굳어간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감정이 곧장 신경계의 속도를 바꾼다는 점이다. 불안이 짧게 스쳐 지나갈 때도 신경계는 즉각적으로 반응해 심박을 올리고, 호흡을 얕게 만들며, 근육을 살짝 조인다. 이런 반응이 하루 수십 번 발생하면 몸은 ‘항상 긴장해야 하는 환경’이라고 판단하고 신경계를 고착화된 형태로 재설정한다. 이것을 흔히 긴장성 통증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감정적 과부하가 신경계의 기본값을 바꿔버린 결과에 가깝다. 사람들은 근육을 풀려고 마사지와 스트레칭을 반복하지만, 이 근육은 단순히 피로해진 것이 아니다. 몸 전체가 경계 모드에서 벗어나지 못해 생긴 일종의 ‘경직된 감정의 흔적’인 것이다.

하지만 해결의 실마리 역시 몸에 있다. 근육은 감정을 따라 반응하지만, 역으로 근육을 풀어주면 감정도 조금씩 풀린다. 이런 신체적·정서적 상호작용은 억지로 교정하는 방식보다는 느슨한 풀림의 순간에서 회복을 시작한다. 하루 중 잠깐이라도 어깨를 의자에 완전히 맡기고, 턱의 힘을 의식적으로 내려놓고, 목 앞쪽 공간이 넓어진다는 느낌만 가져도 신경계는 경계 모드에서 살짝 빠져나온다. 핵심은 강한 스트레칭이 아니라, 몸이 “더 이상 위협이 없다”고 오해할 수 있게 만드는 작은 해제의 순간이다. 그런 순간이 반복될 때 얕아진 호흡은 자연스럽게 깊어지고, 경직된 근육은 자신의 자리를 천천히 되찾는다.

통증을 다루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관점은, 목과 어깨는 단순히 ‘자세가 나빠서’ 혹은 ‘스트레스를 받아서’ 아픈 부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여기는 마음이 가장 먼저 닿는 공간이고 오래된 감정까지 저장하는 무언의 기록장과 같다. 그렇기에 통증을 다루려면 억지로 힘을 빼려고 할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순간에 몸을 먼저 조이고 있었는지를 천천히 떠올려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때로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 때로는 예측하지 못한 일정, 때로는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요구했던 기준이 근육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다.

하루가 끝났을 때 어깨가 무겁고 목이 아프다는 것은 단순한 육체적 피로가 아니라, 마음이 하루를 통과하며 남긴 긴장들이 몸 위에 조용히 누워 있다는 신호다. 그 통증을 없애겠다고 애쓰는 대신, 그 통증이 말하는 것을 잠시 들어보는 일. 긴장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순간에 생기지만, 이완은 언제든 조용한 선택처럼 시작될 수 있다. 몸이 먼저 풀리면 마음도 따라 풀린다. 그 순환이 다시 시작될 때, 우리의 일상은 조금 더 단단해지고 한결 부드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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